<변승우 목사>
2. 현대교회는 신앙에 대해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히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많은 사람들이 로이드 존즈를 가리켜 금세기 최고의 설교자라고 부릅니다.저는 그의 책 중 두 가지를 특별히 여러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산상설교집 상 하”권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생이나 목사님들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은 책인데 “목사와 설교”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목사와 설교)에서 로이드 존즈는 아주 가치있고 중요한 지적을 했습니다.
“설교자가 직면하는 주요 위험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모든 이들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인 모든 이들이 그 점으로 보아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내가 볼 때 사활을 좌우하는 가장 치명적인 실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이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이것이 위험스럽고 잘못된 것은 다음 이유에서입니다. 만일 그렇게 가정한다면 모든 예배에 기성신자에게 적합하게 설교하는 방향으로 치우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의 설교는 항상 교훈적이어서 복음전도적인 요소와 요점은 무시되어 아마 거의 완전히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착각입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하겠습니다. 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부터 시작하지요. 다년간 나는 사실상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는데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교회의 회원이었으며 교회에 출석하고 정규적인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설교자들처럼 모두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짓된 단정을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상태에 대한 진정한 진단이 雅니었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나로 하여금 죄를 확신시키고 내게 필요한 것을 알게 하고, 그래서 참된 회개에 이르게 하고 중생에 대한 것이 무엇인가 말해주는 설교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설교를 들은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가 들은 설교는 언제나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정,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그 회중 가운데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금세기 교회의 주요한 실책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홀리죠이>
변승우목사는 로이즈존스목사를 존경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글을 보면 로이드 존스목사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가 목회하는 것이나 설교하는 내용들을 보면 로이드 존스목사가 책망하리라 싶은 말이나 행동들을 한다는 것이다. 위의 로이드 존스목사의 글의 인용을 보면서도 로이드 존스목사가 눈살을 찌푸릴 것을 능히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로이드 존스목사가 상황과 맥락을 벗어나서 어떤 글을 이해하고 그것을 인용하는 것을 참으로 싫어하는 자인데, 변승우목사의 글을 보면 너무나도 자주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실상,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냥 단순한 믿음이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로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소개해야 히브리서 기자가 강조하는 기초의 확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변승우목사가 전개하는 아래의 글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설명하는 부분은 한 군데도 없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참된 믿음이란 1)마음으로 믿는 것, 2)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믿는 것, 3)문자 그대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참된 믿음론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정당하게 성경적인가 하는 것은 아래에 따져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의 로이드 존스목사의 글을 인용한 것의 정당성을 따져보기로 하자. 로이드 존스목사는 말하기를, “내게 필요한 것은 나로 하여금 죄를 확신시키고 내게 필요한 것을 알게 하고, 그래서 참된 회개에 이르게 하고 중생에 대한 것이 무엇인가 말해주는 설교였”는데, 그렇게 설교해 준 목사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변승우목사의 설교가 그렇게 해주는가? 앞에서 살폈지만 그의 회개론은 회개를 부르짖지만 너무나도 막연하고 모호한 회개론이었다. 바로 변승우목사와 같은 그런 잘못된 회개론을 로이드 존스 목사는 지적하는 것이다. 사실, 로이드 존스목사가 목회할 당시의 영국교회의 상황은 이런 잘못된 회개론, 막연하고 피상적인 회개론이 판을 쳤다. 회개론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바로 변승우목사가 지향하고 있는 알미니안주의식의 회개론이 판을 쳤던 것이다. 죄의 본질과 실재를 체험하고 그 실재를 깨닫게 하는 회개론이 없었던 것이다. 로이드 존스목사는 그런 회개론을 바로 그의 조상들이었던 칼빈주의적 방법론주의자들(Calvinistic Methodists)들에게 찾았다. 곧 자기 고향이었던 웨일즈의 칼빈주의자들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죠지 휫필드의 전통을 이어받고 바로 스펄존의 설교전통을 이어받으려고 하였었다. 그것은 곧 변승우목사의 신학이 지향하는 그런 알미니안주의신학의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하되,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강해함으로 강조해 나갔던 것이다.
지금 변승우목사가 설교하고 있는 본문인 히브리서6장1절의 “믿음”부분을 강해한다면, 변승우목사처럼, 그 “믿음”이라는 말 속에 자기 자신의 신학적 전제들을 쑤셔넣는 ‘해적질”(eisgesis)가 아니라, 로이드 존스목사는, 참된 “해석”(exegesis)를 하기 위해서 앞뒤 단어와 문맥과 상황을 고려하는 것을 기본 작업으로 삼는다. 이 본문의 “믿음”이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임을 강조하고 또한 그것이 무엇인지를 강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어떤 “믿음”에 대한 “이론”을 이 본문 속에 집어넣어서 강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로이드 존스 목사가 가장 싫어하는 짓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일을 하면서, 변승우목사는 지금 로이드 존스목사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목사가 바로 자신의 그런 짓을 비판하는 줄을 모르고 로이드 존스목사의 글을 즐겨 인용하는 것이다.
물론, 로이드 존스목사가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죄를 확신시키고 …그래서 참된 회개에 이르게 하고 중생에 대한 것이 무엇인가 말해주는 설교”가 지금도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변목사의 설교가 과연 그러한가 하는 것이다.
그의 믿음에 대한 설명을 읽어가면서 과연 그러한가 검토해 보게 될 것이다.
- 출처 :양무리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 holy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