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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코스는 성경적인가?

안산 회복 2011. 3. 25. 16:01

알파코스의 내용은 영문 이름 ‘ALPHA’에서 어느 정도 파악된다.

‘Anyone can come(누구든 환영한다)’

‘Learning and laughter(웃으며 배운다)’

‘Pasta(음식을 나눈다)’

‘Helping one another(서로 돕는다)’

‘Ask anything(무엇이든 물을 수 있다)’의 머리글자를 모은 것이다.

알파코스는 1970년대 중반 서구 교회의 극한 침체기에 영국 성공회의 찰스 만함 신부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교회를 떠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보여 달라”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달라”고 요구하자 만함 신부가 신약성경의 전도원리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후 존 어바인과 니키 리에 의해 보완 발전되다가

니키 검블에 의해 현재의 틀을 갖추고 전 세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변호사였다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니키 검블은

90년 HTB(Holy Trinity Brompton) 교회에 부임하면서 알파코스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93년부터 전 세계로 보급되기 시작한 알파코스는 현재 세계 150여개 언어로 170여개 나라에서

적용하고 있다.

니키 검블은 지난해 2월 1만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국제알파콘퍼런스의 주강사로 참여했다.

한국에는 1990년대 중반 도입됐다.

92년 간이식수술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은 알파코리아 이상준 대표가 우연히 알파코스를 접한 게 계기였다.

그는 영국의 알파본부로 달려가 알파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뒤 98년 영락교회에서 첫 세미나를 열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사재를 전부 들이다시피 하며 진력한 결과 현재 국내에서 알파코스를 적용해

배 이상 성장한 교회만도 400곳이 넘는다.

교회뿐 아니라 기관과 단체까지 포함할 경우 3600여 곳이 알파를 도입하고 있다.

 

 

릭 워런, 빌 하이벨스, 알리스터 맥그래스, 제임스 패커 등 외국의 저명한 목회자와 신학자들뿐 아니라

국내서도 조용기 김장환 김삼환 이동원 최홍준 최종진 고용수 김의원

수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알파의 우수성과 건강성을 인정하고 있다.


알파코스는 초청하는 전도 대상자들에 대한 호칭부터 특이하면서 신선하다.

흔히 쓰는 ‘비신자’나 ‘불신자’라는 말 대신에 ‘게스트(Guest)’라고 표현한다.

전도 대상자를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많이 필요한 최고의 손님으로 본다는 뜻이다.

알파코스는 15개의 주제 토크를 가지고 매주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모임에서는 먼저 게스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따뜻하고 열린 분위기 속에서 환영하며,

그날의 주제 토크를 함께 듣는다.

토크가 끝나면 잠시 차와 간식을 나눈 후,

소그룹 모임에서 토크에서 나온 주제들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무엇이든지 질문하고 이야기하며 의문을 해소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인 복음의 논리가 정돈되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며,

생동감 있는 신자로 태어나게 된다.

수료식인 축하만찬에선 주변의 비신자들을 초청하도록 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감동이 있다.

프로그램 중 주말수양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알파코스에 참가한 게스트들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에 대해 가르치는 시간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시간 성령으로 충만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3497644&cp=du

 

 

알파코스가 과연 성경적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알파코스 프로그램에 대해 이단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적 현상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비성경적으로 방언을 강요하는 행위 등은

삼가야 한다는 결정이 2009년 교단 정기총회에서 내려졌다.

통합총회는 알파 코스 중에 소위 금이빨 사건이나 팔이 길어지는 사건 등

과도하게 신비주의적인 현상을 보인 점은 엄격히 배제해야한다는 연구보고서를 이번 총회에서 채택했다.

알파코스 과정 중 비이성적인 방언 사역도 성경에 비춰봤을 때 문제가 있어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즉 '방언은 성경에 나타난 자연스러운 성령의 한 은사인데 알파코스 과정 중

방언을 가르칠 수 있고 배워야 하는 은사로 비춰지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예장합신총회에서는 알파코스에 대해 지난 해 '예의주시'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올해 총회에서는 '참여 및 교류 금지' 결정을 내렸다.

 

http://www.cbs.co.kr/chnocut/show.asp?idx=1285112

 

 

 

한국성경신학회는 2009년11월2일 신반포중앙교회에서 ‘불건전한 신앙 운동에 대한

성경신학적 검토’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발제자 서창원(삼양교회) 목사는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알파 코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발표에 앞서 디모데후서 3장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란 구절을 인용, 불안전한 신앙운동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서 목사는 “‘알파 코스’가 아무리 불신자 전도를 위한 선의의 목적으로 출발한 전도프로그램이라도

그 핵심이 비성경적·탈신학적·신비주의에 기초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오직 성경이라는 기치를 내건 개혁교회에서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가르침”

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알파 코스에서의 ‘회심’은 사실 그리스도께 향한 회심이라기보다

크리스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회심을 뜻한다”며

“지식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알파 코스에서는 소위 연민의 고통(자기 것이 아닌 고통을 몸에 느끼는 것)을 지식의 말씀”

이라고 주장한다며 우스깡스런 논리를 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코스를 금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철저하게 체험위주의 신앙관을 심어준다

교리적 체계를 마비시킨다

성경 진리를 교묘하게 왜곡하고 자의적·주관적·무속적인 현상을 추구하게 만든다고 전했다.

한국성경신학회는 “오직 성경을 중심으로 나아가야 성령과 함께 나아갈 수 있다”며

“신앙인 모두가 성경에 귀를 기울여야한다”고 전했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5457

 

 

 

최근 각 교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알파 및 G12에 관한 공청회가

2008년5월22일 예장 합동 총회회관에서 실시됐다.


두번째 주제인 <알파코스>관련 발제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문병호 교수와

총신대학교 서창원 교수가 맡았다.

문 교수는 <개혁주의 성령론의 관점에서 본 알파>란 주제의 발제에서

알파코스는 하나님의 유효한 소명(calling)으로 말미암아 선택된 백성에게 구원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비평했다.

문 교수는 알파코스의 가르침에서는 “믿음은 은혜의 선물이라는 가르침이 깊이 조명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주권적 소명은 사람들간의 인위적인 접촉으로 대체되고,

알파코스의 수료증이 칭의의 법정적 선포보다 더 강조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단 모여서 서로 편안하게 세상적 관심사들을 나누고,

그것들에 비추어서 성경이 진리임을 서로간에 확정하고,

마지막 날 여러 기이한 현상들을 통하여서 성령의 임재를 처음으로 체험한다는

알파의 구원서정은 매우 기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번째 발제에 나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서창원 교수는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알파 코스의 성경관과 구원론>란 주제의 발표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중요성과 알파의 비개혁주의적 모습을 비판했다.

그는 특히 목회자들이 목회 성공이라는 고질병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개혁주의적 신학을 견고히 지키는 목회자들이 되자고 호소했다.

서 교수는 “알파코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업체가 되었다”면서

복음을 맥도날드화한 것이라 비판했다.

그는 알파의 서적들과 교육용 비디오와 카세트, 포스터, 티셔츠, 카 스티커 및 찬양집 등으로

올리는 판매 수입금이 엄청나며,

그들의 전략지침들은 마치 다단계업체가 운영하는 교육과정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들과 차이는 인격적인 성령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빌어

자신들의 사람들을 만들어가는 것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192571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신학위원회와 이단대책위원회는 공동으로 2008년5월19일 

'장로교 입장에서 본 알파코리아 세미나'를 개최하고 성경신학적 입장에서

조병수 교수(합신대 신약신학), 조직신학적 입장에서 김병훈 교수(합신대 조직신학)가 각각 발표했다.

이번 세미나는 지난해 총회에서 두 노회가 '알파코리아에 대해 연구해달라.'는 헌의가 있었고,

이를 총회 차원에서 수용해 이뤄졌다. 알파코리아는 그간 류영모 목사(한소망교회)의 금니사역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이날 첫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조병수 교수는

"알파코스는 자기최면과 방언 따라하기를 강요하는 등 비성경적이고 인위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다."며 알파코리아의 사역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알파코스의 문제점으로 '자기최면 강요'와 '방언 따라하기'를 지적한 조 목사는

"성령충격요법은 11주 코스 중 9주차에 더욱 강조된다."고 말하고

"토요일 오후 시간에 진행되는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가'시간이 주말수양회의 핵심이다.

이 시간에 '성령충만의 방법은 방언'이라고 설명하고

'어떻게 방언을 말할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알파코스는 방언을 '가장 좋은 은사는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표시는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양보적 표현을 사용하나 실상은 '신자가 되기 위한 입문'으로 표현한다."며

"'방언의 은사를 받기 원하는 사람에게 방언의 은사를 내리겠다'고 기도한다."고 꼬집었다.

이런 알파코스의 신학적 문제점으로 조 목사는 "어떻게 성령을 인위적으로 초청할수 있느냐"고 묻고

"또 한발 물러나 초청한 성령으로 하여금 은사를 주도록 할 수 있느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조 목사는 자기최면에 대해서 "'입을 열라',

'모국어나 자기가 아는 언어를 제외한 다른 말을 입을 열고 말을 시작하라',

'어떤 말이든 하라'는 등 자기도취와 자기최면을 강요한다."고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  "검블(영국 알파코스 신학자)은 '첫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

이렇게 안 될 경우 이런 장애를 극복하고 돕도록 하기 위해 나(검블)나 다른 사람이 하는 말소리를

따라하는 것으로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다."며

방언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졌다. 


또 한국산 알파코스인 알파코리아에 대해

"G12 목회와 묶여서 영국 알파코스보다 훨씬 신비주의적, 샤머니즘적으로 나가고 있다."며

"류영모 목사가 말하는 G12의 정의는 '시대구분의 오류', '마지막 추수에 대한 오해',

'하나님의 세계경영 원리에 대한 오해'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조 목사는 알파코스와 G12 셀목회가 성행하는 이유에 대해

"성장과 부흥에 대한 현실의 강요를 이기지 못한 것, 현상에 너무 집착하는 것,

인위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병훈 교수는 조직신학적 입장에서 알파코스를 비판했다.

"'체험'을 기초로 하여, 예언, 치유, 능력 기도, 영적 전쟁 등에 대해서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신학적으로 부적절한 이해와 신앙양태를 야기 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알파코스는 개혁주의 교단에서 결코 그대로 용인될 수 없는

'신비주의적'이며 '은사주의적'인 전도전략"이라며

"교회론적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매우 농후하니 심히 경계해야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김 교수는 "개혁파 목사는 체험적 주관주의에 호소하여 복음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객관적 말씀의 진리를 강론함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라며

"목사들이 성경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성경연구에 더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11657§ion=sc4

 

 

 

다음은 서청원 목사의 <개혁주의 성경론과 구원론의 입장에서 본 알파>에 대한 

박혜근 교수의 논평글입니다.

 


알파코스의 대중성은 정련된 신학적이고 지적인 내용보다는

토론토 블레싱(the Toronto Blessing)과 같은 은사주의운동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성취된 것이었다.

1998년 전후로 토론토 블레싱이 교회와 정통신학의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급속히 쇠퇴하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알파코스가 등장하게 되면서 꺼져가는 은사주의운동의 불씨를 다시 일으키는

그러면서도 대중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실로 괴이하다 할 황홀경을 수반하는 은사주의운동에 대한 신학적인 비판을 잠재우면서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보다 체계적인 모범교안이 등장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검블의 알파코스인 것이다.

검블은 출판물과 같은 문서화된 도구가 은사주의운동의 매우 유용한 방어책이 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

 

알파코스는 은사주의운동이 단순한 비교적(秘敎的) 현상에서부터

성경공부와 기본적인 복음적 진리를 제시하는 하나의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반전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은사주의운동이라는 알파코스의 근본적 성격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알파코스는 본질적으로 열광적 은사주의운동을 이론화한 결과였던 까닭에

주로 은사주의교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채택되었고

그리고 이 교회들이 다른 일반의 개신교회와 로마 카톨릭, 성공회,

심지어 제칠안식일재림교에게까지 알파코스를 확산시키는 전초기지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알파가 급속히 확산되었던 이면에도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이미 빈야드 운동(the Vineyard Movement)이나

토론토 블레싱의 은사 운동에 대한 경험이 중요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런 정도의 알파코스의 역사적인 기원과 발전 과정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만 있어도,

알파코스의 신학사상이 근본적으로 개혁주의의 신학적 입장에 부합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본 논문의 저자인 서창원 목사는 검블의 성경관과 구원관이라는 두 가지의 주제에

한정한 비판적 분석을 수행하였다.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알파코스의 성경관과 구원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저자가 주장한 대로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은사주의자로서 검블은

기본적으로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와 관련하여 연속주의자 혹은 회복주의자의 입장에서

성경의 완료성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예언의 은사와 관련하여 그는 오늘날에도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으로 인해서

예언, 꿈, 환상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시가 중단 없이 주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요한복음 14:12의 무리한 해석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형식적인 원리에서는 성경이 완료되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성경은 개인의 체험 속에서 개별적인 성령의 지도로 보충되어야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검블은 이런 개인적 체험의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따라서

성경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기는 한다.

그러나 체험의 유용성에 대한 알파코스의 강조는

필연적으로 성경의 탁월한 지위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

“왜 그리고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 것인가?”라는 제목 하에서 그는

“성경은 오류가 없으며 신조와 행위에 관한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라고 하면서도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 그러한 신적 권위를 갖는다고 명시하지는 않고 있다.

검블의 성경관의 문제는 바로 이것에서 비롯된다.

성경만이 유일한 신적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라고 명시하지 않을 때

개인의 체험이나 확신은 얼마든지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게 될 수도 있고

로마 교회의 외경들이나 심지어 이단들이나 소위 예언은사자들도 성경과 마찬가지로

권위적인 것이 될 수가 있다.

만일에 어떤 결론이나 결정이 성경의 진리에 근거한 사고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성경의 권위는 훼손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성경 이외의 것을 성경보다 더 상위에 두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성경에 대한 검블의 저급하고 비평적인 입장을 고려한다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다.

예를들면 성경은 도덕적인 문제가 있고 또한 역사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거나,

성경이 가이드북이라거나, 혹은 성경보다는 하나님은 상식을 통해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신다는 등의 주장은 성경의 충분성과 완전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완전하고 무오한 계시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앙체험의 유용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였다면 성경이 갖는 유일한 최고의 권위는 필연적으로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검블은 성경은 기본적인 원리를 제공하는데 그칠 뿐 개별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으므로 성령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할 때,

성경은 질적인 원리에서도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알파코스에 참여하는 독자들이 성경을 읽을 때 과연 성경이 무엇을 뜻하고

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적절한 원리도 모른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막연히 성령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을 구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감정이나 직관을 성경의 특정한 본문이 의도한 진의로 오인하게 되는

위험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성경의 바른 해석과 적용은 장기간 전문적인 교육을 요구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알파코스는 독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처럼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성경은 해득되어야 하기보다는 참조되어야 할 대상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검블의 성경관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을 성령의 연속적인 사역으로 정당화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검블의 죄의 이해는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신학적으로 퇴행적이다.

검블에 따르면, 죄는 삶을 온통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이며,

펠라기우스의 입장과 유사하게 의지에 따른 행동으로 구현되지 않는 한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지옥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텅 빈 도시”이며 그것은 “파멸의 날”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죄와 지옥에 대한 검블의 이해는 성경의 그것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성경은 인간의 죄행 뿐 아니라 마음의 뜻과 생각 그리고 인간의 본성까지도 죄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으며

(창 6:5; 출 20:17; 마 5:28; 갈5:20; 엡 2:3),

지옥은 불못이며(계 20:15) 영벌(마 25:46)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느슨한 죄나 지옥의 이해는 회개의 필요성이나 복음의 긴급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그의 구원관을 평가하자면, 검블의 구원관은 오직 은혜에 근거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하여서만,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획득하는 의로움이라는

개혁주의의 독특한 구원이해를 적절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중생의 의의와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거나 혹은 간과하고 있다.

이같은 알파코스의 구원관의 문제는 분명히 인간의 전적부패와 전적 무능력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탈선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검블의 구원관의 이러한 결점은 이 시대의 문화적인 상관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탈현대적 사회는 어떤 형태의 윤리성이라도 윤리적이라는 점에서 쉽게 용인하며,

특히 본 훼퍼(Bonhoeffer)가 주장한 대로 “죄인”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도발적인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동시대의 문화에 상관성을 확보하고 현대인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자면

검블은 죄에 대해 극히 종교적으로 절제되고 문화적으로 정제된 표현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 결과 탈현대사회에서 누구에게도 위협적이지 않고 노골적이지 않은

문화화 된 프로그램이 되고자 했던 알파코스는 결국 불가피하게 사람들에게

참된 회개를 요구할 수 없는 중대한 장애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검블이 죄와 구원에 관련하여 신학적으로 퇴행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저변에는

“대중 친화적인 기독교의 부흥”이라는 알파코스의 근본취지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알파코스는 기독교의 복음을 21세기 탈현대적 사회에 문화적으로 순치시킨 결과물이다.

동시대의 문화에 적응하고 그것의 지시를 받고자 하는 의도로 인해서

알파코스는 성경적인 죄의 이해에서 벗어났고

그 결과 믿음보다는 감정과 자아를, 회개보다는 회오를,

그리고 성화보다는 대중성을 더욱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 점을 혹평한다면, 알파코스는 정통과 이단의 혼합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알파코스는 종종 너무 광적이며,

성장에 집착하고 체험을 강조하는 등 기업가정신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적 친화성을 교리적 정통성보다 더 우선하는 알파코스가

개혁주의 신앙을 신봉하는 교회에서도 무분별하게 채택되고 있다는 사실은

겉으로는 보수적인 모양을 띄지만 실제로는 현대 문화에 동화되지 못해서 안달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도 죄에 대한 설교를 기피하고 청중들을 불쾌하게 하는 언사를 지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미 만연하고 있다.

회개를 촉구하기 보다는 위로와 격려 그리고 자아완성 등에 관하여 주로 설교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청중의 지지와 승인이 없으면 교회의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적인 일치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교회의 존립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계몽주의 시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신념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추종자를 더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지가 때로 죄를 낳기도 하지만, 그러나 탐욕은 필연적으로 죄를 낳는다.

교회의 양적 성장을 무한히 추구하는 것은 목회 역시 얼마든지 탐욕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목회자의 정신과 자세가 사도적인 모범에서 벗어나 현대주의에 물들때 신학은 필연코 부차적인 것이 되고, 교회는 현대 문화의 한 단층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어에서 저자가 언급한바 목회에서 무엇보다 신학이 중요하다고 한 점,

그리고 알파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인 검증을 요구한 것은 지극히 옳다고 할 것이다.

논평자 역시 목회에서의 신학이 차지하는 최우선적인 중요성에 대한 목회자의 심각한 인식결여가

오늘날 현대교회가 정체 현상을 보이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믿고 있는 바이다.
 
목회에서 신학이란 고작 부가적이거나 혹은 “신학교의 일”라는 신학의 중요성에 대한

저급한 인식이야말로 실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작금의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매우 다양한 이단들과 현대주의의 다양한 도전으로 인한

혼란의 한 중대한 원인은 단적으로 신학의 부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신학이 신앙의 체계적인 표현이라면, 신학은 신앙인들에게 불가피한 것이며

그것의 건전한 수립과 발전은 진리를 보전하고 전파하는 일에 필수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교회의 제도와 조직 그리고 목회적인 실천의 기법과 장치들은

반드시 신학적인 검증을 거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 과정에서

성경의 승인과 지지를 얻을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마땅히 거부되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실제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그 본질이 실천적인 효용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계시성에 있기 때문이다.
 
복음이 갖는 시대적인 상관성과 사회적인 효용성이란

교회의 전도전략이나 원리 혹은 기술의 완성도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복음이 진리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진리야 말로 가장 실천적이며 효과적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복음이 실효적인 것이 되도록 보증하신다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하며,

성령께서 사람의 창의적인 고안물이나 프로그램에 의존하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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