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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코란)과 성령

안산 회복 2011. 5. 8. 18:56

꾸란과 성령

 

- 소윤정의 책에서 -

 

 

1장. 서 론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성경을 최후 계시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완전하지 않은 성경”을 대신하고자 ‘하나님’(알라)이 무함마드를 통하여 완전한 계시를 이 세상에 주었다고 한다.

 

  이슬람교의 “계시”인 꾸란은 기독교와 무관한 계시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와 연관된 계시임을 주장하면서 기독교 계시의 불완전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슬람은 모세가 받은 계시인 구약, 다윗이 받은 계시인 시편, 예수가 받은 계시인 신약, 그리고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인 꾸란을 주장하면서 꾸란과 성경을 모두 다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런데,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는 과정과 계시 내용은 기독교 성경의 핵심 내용과 완전히 대치되는 것이다. 특별히, 알라의 계시를 전달했다는 “가브리엘” 천사는 기독교적인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인데, 창조자의 영이신 성령을 꾸란은 피조물인 “가브리엘” 천사로 해석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성령”은 분명 삼위일체 중 삼위이신 성령 하나님이 아니다(“가브리엘 천사”라고 하는 꾸란을 “계시”한 영이 성령과는 별개의 영으로서 이슬람의 창조된 영<진, Jinn>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꾸란의 “계시” 장면에서 언급되고 있는 “가브리엘 천사”에 관한 문제는 성령과 관계된 기독교 삼위일체 신관에 위배되는 심각한 도전인 것이다(창조주 하나님 자신을 피조물로 전락시키는 신성모독의 결과 초래함).

 

 

2장. 꾸란 “계시”에 관한 이론적 배경

 

  꾸란의 첫 장인 개경장 파티하(예배 때 암송되는 신앙고백문)의 마지막 부분은 “저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라는 간구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올바른 길”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 자들의 길”(유대인들의 길)도 아니고,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의 길”(기독교인들의 길)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은총을 내리셨던 자들의 길”이라는 것이다.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척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여하에 달려 있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고 있는데, 꾸란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예수 이후의 선지자로 말미암아 무함마드를 소개하면서 무함마드로 인해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해졌다고 믿는 것이다.

 

  이슬람 전통에서 보는 예수는 아브라함, 모세, 무함마드와 동렬에 있는 신의 사자이다. 신의 가르침이 아담에게 계시된 이래 연속으로 신의 사자들에 의해 보완적으로 이어져 결국은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어 ‘올바르게 사는 길’의 종교인 ‘이슬람’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근거로 하는 ‘바나바 복음서’는 남아프리카인 아담 피르바이가 쓴 중세기 위조품으로, 1709년에 홀랜드에서 나타났다. 이 책 44장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을 제사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스마엘은 메시아의 조상이고, 이삭은 메시아의 사자(Messenger)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예수님이 장차 올 “메시아인 무하마드”를 전하였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령은 사랑의 본체이신 인격적 하나님 자신의 영이고, 이슬람의 “성령”은 단지 하나의 피조물인 “영”일 뿐이다. 이슬람교에서 ‘천사’를 비롯한 ‘성령’과 모든 ‘영’은 알라가 창조한 ‘창조된 영’일 뿐이며, 알라로부터 온 이 ‘영’은 성경에서부터 유래한 개념이지만 성령이 아니고, 자유가 없으며, 알라에게 종속된 심부름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