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 평가와 21세기 한국장로교회 찬송을 위한 제안
- 오광만 교수(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들어가는 말
16세기 종교개혁의 핵심 구호 중 하나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개혁자들은 이 구호를 종교개혁 모든 영역에 적용했다. 특히 종교개혁 시대에 나온 예배용 찬송가인 ?제네바 시편찬송가?는 “오직 성경”의 구호를 예배와 찬송에 적용하려 한 대표적인 산물이다. 오늘날 시편 찬송만을 부르고,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교단과 교회는 그들이 시편찬송을 불러야 하는 정당성을 바로 이 사실에서 찾는다. 16세기 종교개혁자(그 중에서 칼빈)의 찬송은 21세기의 개혁파 교회들에게 찬송의 의미에 대해 중요한 성경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필자는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의 찬송의 한 예로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를 예로 들어 칼빈이 시편찬송을 만들게 된 배경과 시편찬송에 들어 있는 핵심 개념과 찬송의 정신을 분석하고 평가함으로써 21세기 한국교회의 바른 찬송의 지침을 얻으려 한다.
1. 개혁파 신학과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
칼빈은 여러 면에서 후대 교회에 지표가 되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쓴 기독교 강요와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성경의 의미를 설명한 주석 등은 교회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 또 교회가 선포하고 행해야 할 개혁파 신학의 정신과 원칙이 무엇인지를 제시한 작품들이다. 칼빈의 신학 총체만큼 중요한 업적은 그가 제네바에서 만든 ?제네바 시편찬송가?이다. 이 찬송가가 나오게 된 배경과 거기에 반영된 칼빈의 찬송의 정신을 차례로 살펴보자.
1.1 제네바 시편찬송가?가 나오게 된 배경
칼빈이 교회에서 시편찬송을 부르도록 장려하고, 실제로 칼빈이 종교개혁을 수행하는 동안 시편 찬송을 만들게 된 과정과 시편찬송의 정신은 그가 프랑스와 스위스 제네바 그리고 스트라스부르에서 행한 종교개혁 상황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그는 1538년과 1541년 사이에 스트라스부르에 머물면서 프랑스 난민 교회를 대상으로 목회를 했다. 그가 이 곳에서 목회를 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칼빈이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 지역에 있던 스트라스부르로 가려고 할 무렵,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 중이었다. 두 나라를 잇는 도로가 차단이 되어 그는 행선지를 스위스 제네바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칼빈이 직접 스트라스부르로 가지 못하고 우회하여 제네바에 잠시 머문 것이 오히려 칼빈의 그 후 사역을 위해서는 더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는 거기서 화렐(Farrel)을 만나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이끌어줄 것을 제의 받았기 때문이다.
칼빈이 제네바에 머물고 있는 동안 교회 예배와 찬송과 관련하여 한 중요한 시도는 1537년 1월 16일에 제네바 시의회에 제안한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칼빈은 시의회에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나는 매주일 예배 때마다 성만찬을 베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만찬을 둘러싼 치리에 관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삶에 관한 내용이다. 칼빈은 이 두 내용을 제안하면서 바른 찬송을 부르는 것과 관련하여 몇 가지 그의 입장을 천명하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직접 옮겨본다.
공적인 기도의 형태로 시편을 찬송하는 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에 대단히 유익합니다. 시편찬송은 하나님께 간구하거나 그분을 찬송합니다. 시편을 기도하고 찬송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감동되고 자극을 받아 이와 비슷한 기도를 드릴 수 있으며 동일한 열정으로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할 수(또는 복을 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찬송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 칼빈의 종교개혁의 목표 중의 하나는 교회가 찬송다운 찬송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대단히 유익한 일이라면서, 찬송을 교회의 교회됨을 이룩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밝힌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 찬송이 바로 시편찬송이다. 칼빈이 이 논문에서 시편찬송을 부르기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칼빈의 글을 직접 인용해보자.
한편, 교회에서 불려지기를 열망하는 시편찬송이 있는데, 우리는 고대 교회에서, 그리고 입술과 마음으로 회중가운데서 부르는 것이 좋다고 말한 사도 자신의 증거에서 그 예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적용해 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이것으로부터 생기는 유익과 교화를 예상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만물들이 그러하듯이, 신자들의 기도들은 매우 냉랭하여 우리는 무척 부끄럽고 심지어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시편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상승시키는 데 자극을 주며, 우리를 감동하여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일깨우며 찬송하는 열정으로 우리들을 이끌어 갑니다. 게다가 로마 가톨릭과 그에 속한 자들이 교회로부터 빼앗아간 유익과 위로함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진정한 영적 찬송이 되어야 하는 시편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자기들 사이에서 중얼거리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글에 따르면, 예배 때 부를 찬송과 그 신학적 근거는 목회적 필요성에서 나왔다. 교회가 시편찬송을 부를 객관적인 이유는 사도(바울)의 증언과 고대 교부들의 제안에 기원을 둔다. 당시 예배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사를 중심한 예배였고,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칸토라고 불리는 특정한 사람(성직자)만 찬송을 불렀다. 이에 비하여, 칼빈은 어떻게 하면 성경과 초대 교회의 사도적 전승에 따를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당대의 미사를 개혁하여 바른 예배 갱신을 추구하였고, 그 일환으로 교회에서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을 계획하였다.
더욱이 성도들과 관련해서는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상승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데 시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시편찬송을 만들 중요한 이유였다. 시편은 성도들의 진정한 영적인 찬송이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도들에게서 시편을 부를 찬송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 칼빈은 제네바의 시의회에 제출한 ?교회 조직과 그 예배에 관한 논문?에서 찬송과 관련하여, “전부터 몇몇의 겸손한 교회들로 하여금 노래하도록 한 유산들은 모든 사람들이 부르는데 익숙할 때까지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사람들은 모든 주의를 기울여 들으며 진심으로 입으로 불리는 것을 따라해야 한다”라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칼빈은 시편을 불러야 하는 목적을 기도의 냉랭함에서 찾아 이 문제가 찬송 자체의 문제보다는 기도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성찬과 치리를 비롯하여) 찬송과 관련된 칼빈의 제안은 훌륭했다. 그러나 이 논문은 시의회에서 대폭 수정된 채 통과되긴 했지만, 사실 칼빈이 제안한 찬송의 정신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칼빈은 화렐과 함께 제네바 시의회에 항거하였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자 1538년 부활절 때 성만찬 집례를 거부하고 그해 4월 23일 제네바를 떠났다.
그 후 칼빈이 베른(Bern), 취리히(Zurich), 바젤(Basel)을 거쳐 마침내 찾은 곳은 스트라스부르이다. 칼빈이 그 곳으로 가게 된 것은 역동적인 신학자이면서 다른 종교개혁자인 부처(Bucer)의 권고 때문이다. 칼빈은 1538년 9월에 스크라스부르로 갔고, 그 곳에서 영구히 살려고 시민권까지 받았다. 그 곳은 프랑스 종교개혁의 중심이었다. 당시 스트라스부르는 다양한 복음주의 견해와 로마 가톨릭에 대해 어느 정도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곳에는 프랑스에서 신앙의 박해를 피해 피난해온 사람들이 500명 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스트라스부르는 독일령으로 독일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독일 예배의 분위기에 빠졌으며, 칼빈과 함께 프랑스 예배 의식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칼빈은 이런 상황에서 교회와 예배의 신학적인 틀을 바르게 제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수행하려 하였다.
당시 독일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는 교회마다 루터의 영향아래 루터가 만든 예배 형식을 사용하였는데, 이와는 달리 스트라스부르만큼은 상당히 독립적이었다. 그 곳에서는 디볼트 슈바르츠(Diebold Schwarz)가 1524년 2월 16일에 만든 독일어 미사가 사용되고 있었다. 칼빈은 이 미사를 개신교의 예배로 전환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칼빈은 미사에 중점을 둔 예배에서 설교에 중점을 둔 예배로 바꿨다. 당대 미사는 오늘날 거행되는 미사와 달리 기본적으로 청각적인 경험이 아니라 시각적인 경험이었다. 평범한 미사 참석자들은 사제가 미사를 집행하는 동안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을 뿐더러, 설령 그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든 미사가 라틴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칼빈이 설교 중심의 예배로 전환한 것은 “듣는 것”의 중요성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칼빈의 예배 개혁에 영향을 준 사람은 부쩌(Martin Bucer)였다. 부쩌는 시편과 찬송을 독일어 운율에 맞춰 부르게 하였으며, 라틴어로 된 예배 순서의 명칭들을 서서히 독일어로 바꾸었다. 그리고 “미사”를 “주의 만찬(성찬)”으로, “사제”를 “목사”로, “제단”을 “성찬상”으로 명칭 변경했다.
칼빈은 스트라스부르에서 프랑스 난민들을 대상으로 매일 설교와 강의를 했고, 주일마다 두 번씩 설교했다. 이처럼 칼빈은 목회를 하면서 교회와 예배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도 함께 찬송을 부르게 하였다. 프랑스 난민들은 기뻤다. 본국 프랑스에서는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를 수 없었지만, 스트라스부르에서는 교우들 누구나 제한 받지 않고 찬송을 부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외국어 노랫말과 합창곡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칼빈은 이러한 문제를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음악적인 재능이 없어서 루터와는 다르게 자신이 직접 시편에 곡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칼빈은 우선 대부분의 찬송을 그들이 읽고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로 번역해야 했다. 그는 교우들을 위해 작곡가인 끌레망 마로(Clement Marot)에게 시편을 불어로 번역하도록 부탁하였다. 맨 처음에 마로는 시편 여덟 개를 번역했고, 칼빈 자신도 시편 다섯 개를 번역했다. 마로는 여기에 곡을 붙였는데, 마로가 작곡한 곡의 멜로디는 스트라스푸르 도시가 있던 알사스(Alsace) 지방의 민요였다. 이 곡은 교우들 누구나 쉽게 배우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운율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하여 1539년에 불어판 시편찬송가인 “Aulcuns Pseaulmes et Cantiques mys en Chant”(노래로 된 시편들과 성시들)이 출판되었다. 1539년 시편찬송가에는 시편 1, 2, 3, 15, 19, 25, 32, 36, 46, 51, 90, 103, 113, 114, 115, 129, 137, 138, 142편과 시므온의 노래, 십계명, 사도신경 등 22곡이 수록되었다. 이것은 프랑스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음악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큰 사건이었다. 이 찬송가는 남녀노소 누구나 찬송할 수 있는 대중 찬송가였다. 더욱이, 회중들은 모국어로 노래했고 그 곡조가 그들에게 익숙한 알사스 지방의 곡조였기에 주님을 찬송하는 감동이 컸다. 그 후 칼빈은 1541년에 제네바로 돌아와서 시편찬송에 더 열정을 들여 개신교 이념에 따라 찬송가를 만들어 제네바 시에서 종교개혁에 성공하는 또 하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제네바에서 작업한 찬송이 처음 나오게 된 때는 ?제네바 시편찬송가?를 착수한지 불과 1년만인 1542년이다.
그런데 칼빈과 마로가 주축이 되어 제네바 시편찬송가를 만드는 중에 마로가 갑자기 죽었다(1544년). 마로는 죽기 전에 베자(Theodore Beza)를 후계자로 임명했다. 베자는 칼빈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제네바 시편찬송가를 마무리 하여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최종판이면서 장로교의 최초 찬송가이기도 한 Pseaumes odante trois David(1551, 1554)를 만들었으며, 그 최종판은 1562년에 완성되었다. 이 시편찬송가는 시편과 십계명, 시므온의 노래 등 110개의 운율과 125개의 곡이 사용되어 총 152개의 본문으로 구성되었다.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출판현황은 다음과 같다. Witvliet는 Pierre Pidoux의 글을 인용하여 1562년 초판이 제네바에서만 적어도 27,000부가 출판되었으며, 프랑스와 스위스의 출판사 50군데에서 30,000권에서 50,000권 사이가 인쇄된 것을 비롯하여 불과 몇 년 사이에 9개 언어로 번역되어 거의 100,000부가 인쇄되었다고 밝힌다.
그러므로 제네바 시편찬송가는 넓게는 16세기 종교개혁이라는 분위기에서, 그리고 그 동안 로마 가톨릭에서 수행해온 미사와 다양한 복음주의를 교정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좁게는 칼빈이 고국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와 독일 일부의 프랑스 난민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1.2 칼빈과 시편찬송가
제네바 시편찬송가?에는 음악에 대한 칼빈의 이해가 반영되었다. 일반적으로, 루터가 음악을 즐겼고 루터 자신이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여, 칼빈은 음악을 비롯한 예술에 문외한이고 예술을 혐오했다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칼빈의 태도를 종교개혁 일반과 칼빈의 종교개혁을 특징짓는 본질 중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Douen은 칼빈에 대해 “제네바의 교황과 모든 쾌락과 오락의 적이며 예술과 음악의 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칼빈은 창세기 주석에서 유발이 수금과 퉁소 만드는 자의 조상이 된 것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것(악기들)은 우리의 필요(our necessity)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쾌락(our pleasure)을 위한 것들이다. 쾌락은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이것이 음악의 특성이다. 음악은 종교적인 의식에 활용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 악한 유혹과 어리석은 즐거움에 구속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그러하다.
칼빈이 유발에 대해 언급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칼빈은 음악에 무관심하고 부정적인 입장을 가졌던 것처럼 보인다. 정말 칼빈은 음악을 혐오했는가? 칼빈이 음악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지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은 칼빈이 예술을 적대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로마 가톨릭의 체계를 적대시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사실 칼빈은 창세기 주석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그분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면서, 문화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에 대한 칼빈의 고결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그가 처음에 찬송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시대적 정황으로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끼친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교황 체제아래에서 드리던 예배는 “외적인 의식과 심지어 미신적인 행습”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개신교 종교 개혁 이전에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과 관련하여 교회의 공적인 의회에서 결정한 내용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결정들은 찬송에 대한 칼빈의 생각에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음악에 대한 칼빈의 입장과 신학은 그의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나타나 있다. 찬송에 대한 칼빈의 이해와 그의 찬송 정신을 살펴보자.
1.2.1 시편찬송의 정신
찬송에 대한 칼빈의 입장을 알 수 있는 것은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서문일 것이다. 여기서 칼빈은 먼저 주일성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주님께서 예배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가르치신 것을 예배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적인 회집이 이루어진 교회에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말씀 설교와 기도, 그리고 성례전의 집행이 이루어져야 했다. 말하자면 개혁교회의 예배와 순서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명령하신 것과 부합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 당시 거행되던 예전들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시행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기도도 항상 라틴어로 거행되어 듣는 사람들은 그것을 “중얼거림과 막연한 말 또는 의미 없는 소음”으로 인식했으며, 세례 의식은 신적인 권위가 결여되고 인간들이 만들어낸 어리석은 고안들로 둔갑했고, 성만찬은 더더욱 더럽혀져 불경스럽게 되었다. 칼빈은 이것을 마치 “마술사가 그의 주문을 외우는 것과 똑같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칼빈은 예배의 세 요소(설교, 기도, 성례전)를 각각 언급하면서 기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도는 두 종류로 나뉜다. 기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로도 할 수 있다”고. 그는 찬송을 기도와 연관시켰으며, 이런 점에서 찬송은 다른 음악과 구별된다. 찬송과 관련하여 칼빈이 언급한 말을 직접 인용해보자.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불타오르게 하여 열정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한다. 그래서 노래는 가볍거나 하찮게 불러서는 안 되고, 중후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불러야 한다. 그래서 식탁이나 가정에서 사람들이 흥을 돋게 하는 일반음악과 교회에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는 큰 차이가 있다.
칼빈이 말하고 있는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는 물론 시편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굳이 시편을 불러야 하는가? 칼빈은 ?시편 주석? 서문에서 시편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바르게 기도하는 참된 방법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바른 방법”과 “바른 태도를 완벽하게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해에 따라 칼빈은 시편 중에서 지혜의 시 또는 고백의 시를 선정하여 그 시에 운을 붙여 찬송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제네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서 고백의 기도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특이하게도 시편찬송가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이 애가(Lament)와 시편 저자가 원수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 내용으로 이루어졌고, 찬송시(Psalms of Praise)는 적은 비율만이 반영되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1539년 시편찬송가에서는 22개 곡 중에서 오직 세 개가 찬송시이고, 1543년판에서는 오직 네 개만 찬송시였다. Witvliet은 이처럼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통회와 애가의 내용이 많은 이유를 칼빈이 자신을 다윗의 고난과 일치시키면서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시편에서 발견하려는 데 있었다고 해석한다.
칼빈은 어느 누구보다도 예배에서 찬송의 비중을 강조했다. 이 점에서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찬송 인도자들(cantores)에게 요구되는 “찬송 규칙(Regulae canonicorum)”의 영향을 받았다. 이 규칙에는 찬송 인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추라고 규정되었다. “겸손과 절제와 고상함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 음악적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노래하지 말아야 하며, …… 시편은 너무 빠르게 부르지 말고, 음정을 너무 높게 잡지 말아야 한다. 시편은 가사를 분명하게 발음하고, 노래하는 사람의 영혼을 반영하게 단조롭게 부르며, 회중들의 귀에 매혹되게 불러야 한다.” 그래서 칼빈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는 것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믿고, 이와 같은 찬송의 정신을 ?기독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은 표명하였다.
기도나 찬송이 목구멍에서만 나오고 마음의 감동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유익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몸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나는데, 말로 발설하여 노래함으로써 혀를 그런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매우 적절할 것이다. 혀는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말하고 선포하기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혀는 하나님을 찬송하기에 있다! 이 말는 교회에서 찬송하는 것과 음악회 무대에서 부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 노래(찬송)를 부르는 데 얼마나 집중해야 하는 지를 알려준다.
이러한 칼빈의 입장은 시편 찬송을 만들 때에만 해당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1547년에 교회 개혁의 한 방안으로 사도가 친히 우리에게 추천한(고전 14:15, 26) 경건한 시편을 회복할 것을 권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시편은 결코 교회에서 파기되어서는 안 된다. 그 동안 교회에서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이 중단되어 왔지만, 이제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 특히 주의 날과 그밖에 고대부터 지켜왔던 존엄한 축제일에 그러하다”라고. 칼빈은 이것이 교회를 개혁하고 교회가 분열된 것을 치유하는 진정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성경적인 찬송은 교회를 하나로 만드는, 즉 성경적인 에큐메니칼을 이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편찬송의 정신이 실제로 음악적 요소와 관련해서 어떻게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반영되었는가?
1.2.2 시편찬송의 구성과 음악적 특성
제네바 시편찬송은 시편 150편 중에서 125편에 곡을 붙여 만들어졌다.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적용된 음악적 원칙, 음악적 요소 등을 차례로 살펴보자.
1.2.2.1 시편찬송가의 음악적 원칙
먼저 우리는 여기서 당대 유명한 종교개혁자인 루터의 종교개혁의 이념과 비교해 볼 때 칼빈의 음악적 원칙은 엄격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루터가 로마 가톨릭의 전통을 지키면서 그의 개혁이념에 따라 적절한 수정을 가하여, 음악에 있어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배제하지 않은 루터식 합창을 발전시킨 반면에, 칼빈은 로마 가톨릭 정신을 배제하고 원시 초대교회 전례를 좇으려 했으며, 교리도 거기에 기초를 두고자 하였다. 이것은 칼빈이 음악 자체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지녔기 때문은 아니다. 칼빈이 루터처럼 음악을 좋아한 사람도 아니고 음악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도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음악에 대한 칼빈의 입장은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와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는 예배에서 부르기에 적합한 찬송의 내용(가사)과 곡조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제시한 시편찬송의 음악적 원칙은 그것이 예배용 찬송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생각할 수가 없다. 즉 시편을 부르는 것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였다. 이런 이유로 그는 공동체의 예배 분위기, 공동체 전체가 공감하는 찬송을 만들어야 했다. 우선 가사와 운율은 시편의 존엄성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예배용 찬송답게 부르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칼빈은 거룩한 모임에서 품위와 위엄을 중시했다. 그는 “품위”를 이렇게 정의했다. “신성한 신비를 높이 기리기에 매우 적절하여 경건을 위한 행위로 적합하거나 예배 행위에 합당한 장식”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품위는 (찬송을 비롯하여) 거룩한 것들을 행할 때 경건을 증진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칼빈은 이 원칙에 합당한 찬송가의 가사를 시편찬송가와 십계명, 마리아의 찬가(Magnificat) 등과 같은 몇 개의 찬송에 국한시켰다. 교회에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에 대해 칼빈은 ?제네바 시편찬송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며 기도하는 노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비단 정직한 노래만 아니라 거룩한 노래여야 하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분의 사역을 묵상하는 노래이기도 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에게 합당한 찬송을 드릴 수 없다고 말한 성 어거스틴의 말은 참이다. 그러므로 성령 자신이 말씀하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다윗의 시편보다 이러한 목적에 적합한 더 좋은 찬송가는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시편을 노래할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편은 가장 좋은 찬송가이다.
여기서 칼빈은 시편찬송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천명한다.
또한 칼빈은 음악 형식에도 제한된 형식을 고집했다. 그는 운율을 선택함에 있어 특정 시편의 분위기(mood), 특성, 구조 등을 염두에 두었다. 곡조는 하나님 앞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찬송하기에 알맞은 “중후함과 엄숙함”을 모두 갖춘 단순한 것이어야 했다. 이런 원칙에 따라 시편찬송의 대부분의 곡들은 1분에 60-70 빠르기로 급격한 음의 변화가 없고, 곡조의 범위는 한 옥타브를 넘지 않았으며, 2분 음표와 4분 음표가 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시편찬송은 불규칙적이지만 리듬감을 살린 곡들로 이루어졌다.
칼빈은 시편찬송을 교회에서 부를 때는 제창(unison)으로 부르게 하고 심지어 오르간을 비롯하여 일체의 악기 사용을 금지하였다. 현대에 시편 찬송이 오르간 반주를 동반하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일반화된 현상이지만, 칼빈 당시 무반주가 권장된 것은 가사의 바른 전달과 찬송하는 사람이 가사에 집중하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처럼 무반주로, 그것도 단성율로 단순한 음악성만을 동반한 칼빈의 시편찬송가는 금세 “칼빈주의 양식(stillus calvinisticus)”의 특성으로 인식되었다.
칼빈은 목소리와 아울러 마음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만일 노래하는 것이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위엄을 갖추어 진행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래도 마음으로 하고 “영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은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귀가 그 노래 가사의 영적인 의미보다 그 곡조에 솔깃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귀에만 감미롭고 유쾌하도록 노래를 지어 부른다면 교회의 위엄에도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하나님께도 극도로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때문에 칼빈은 시편찬송에 최소한의 음악적 특성만 부여하고 전체를 단순 소박한 음악이 되게 하였다. 적어도 스트라스부르와 제네바에서 불려진 칼빈의 시편찬송의 구성과 음악적 특성에는 찬송에 대한 칼빈의 이러한 원칙이 잘 반영되었다.
1.2.2.2 시편찬송가의 가사(Texts)
칼빈은 “음악은 시와 분리될 수 없고, 시는 음악과 분리될 수 없다”는 옛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음악이 가사와 곡조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이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볼 경우 가사의 내용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칼빈은 이것을 이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음악보다는 본문(text)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칼빈은 1543년판 ?제네바 시편찬송가? 서문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음악에 관하여 말하자면, 나는 두 부분을 이해한다. 그 중 하나는 글자 또는 주제와 재료이며, 다른 하나는 노래 또는 멜로디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나쁜 말은 좋은 태도를 망치지만, 멜로디가 그 나쁜 말을 동반할 때에는 그 나쁜 말은 훨씬 더 강하게 마음을 찌르며 마음속으로 침투한다. 포도주가 깔때기를 통해 통 안으로 부어지듯이, 독액과 부패는 멜로디에 의해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든다.
즉 칼빈은 멜로디가 대단한 위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멜로디는 한편 본문의 내용을 향상시키지만, 다른 한편 잘못 사용되면 오히려 사람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칼빈은 멜로디보다는 가사를 강조했으며, 가사의 내용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에 알맞은 영감 된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에게 합당한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칼빈은 성령께서 다윗을 통해 만드시고 말씀하신 다윗의 시편이 하나님께 예배하기에 가장 좋은 노래라고 믿었다. “우리는, 시편을 노래할 때 하나님께서 시편의 말씀을 우리 입에 넣으셔서 마치 우리 안에서 그분의 영광을 높이려고 노래하신다는 확신을 얻는다.” 찬송은 모든 기도와 마찬가지로 찬송하는 사람의 내적 성향과 관계가 있고, 회중들의 언어로 드려야 할뿐더러 “전체 교회의 덕”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칼빈이 찬송을 이런 식으로 설명한 것은 예배에서 부르는 찬송을 기도의 장르로 이해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예배용 찬송의 가사를 시편에 한정한 것은 찬송을 영감 받은 (찬송가용 유일한) 본문으로 생각한 데 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랫말을 짓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칼빈의 이해와 맛 물려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 이외에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할 만한 더 좋은 언어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인간의 언어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칼빈은 1562년 판 ?제네바 시편찬송가? 서문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언어를 창조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 밖이라고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런 이유로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실린 가사는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편에서 왔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가 시편을 성경의 시편 내용을 글자 그대로 불렀던 것과 다르게, 칼빈은 시편을 노래에 알맞게 운을 붙이는 등 운율을 가진 시적 형태로 재구성하였다. 시편은 노래를 할 수 있는 음악 형식으로 고칠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운율을 지닌 시편이 가장 노래하기에 알맞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작업이 정당하다고 칼빈이 언급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그가 성경 본문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도록 부르라고 우리 입에 두신 노랫말로 믿은 것만은 틀림없다.
칼빈은 가사의 바른 전달을 위해서 합창보다는 제창(unison)을 선호했다. 제창은 음악성 때문에 고려된 것이 아니라 회중들에게 가사에 집중하고 가사의 명확한 전달을 도모하려고 고안된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 시편찬송을 어린이들에게 먼저 부르게 했다. 말하자면 어린이들이 찬송의 지도자들이 되었던 셈이다. 이렇게 한 데에는, “아이들에게 특색 있는 음성으로 큰 소리로 노래하게 하여 어른들이 그 곡에 집중하고 마음으로 따라하게 하여 점차 공동체적으로 노래하는 데 익숙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 그 후에는 이런 원칙이 바뀌어 테너 파트가 멜로디로 부르고 나머지 회중들에게 그 내용을 따라하게 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칼빈은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이 가사 내용에 집중하도록 반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칼빈에게 악기 반주는 구약시대에 속하는 물건들이었다. 칼빈은 성경 저자들이 악기를 언급한 것이 찬송에 악기들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악기를 동반한 음악이 “이러한 고대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단지 초보적인 도움을 주려는 데” 그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칼빈이 판단하기에, 이런 악기들은 그리스도 이후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도구이며 “그리스도의 오심으로써 폐기된 법적 예식”에 속한다. 이에 대해 Witvliet은 사실 이것의 성경적인 이유보다는 부분적으로, 당시 악기를 주도할 만한 지도자가 없었고, 시편이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원칙을 지키려는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1.2.2.3 시편찬송가의 곡조(Tunes)
앞에서 언급했듯이, 칼빈은 시편의 곡조는 “절제되고, 노랫말에 적합하게 중후하고 위엄스러운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원칙으로 스트라스부르에서 인문주의자인 마로에게 시편찬송의 곡조를 만드는 작업을 부탁했다. 그래서 초기의 시편찬송가의 곡조는 대부분 마로의 작업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후 칼빈은 제네바로 돌아와서 작곡가요 음악 편집인으로서 재능이 있는 교사였던 루이 부르조아(Louis Bourgeois)에게 곡조 만드는 작업을 부탁했지만 시편은 당대에 알려지고 유행했던 곡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시편찬송의 곡조는 찬송 가사의 내용에 따라 곡조를 달리 하였다. 예를 들어 시편 51편의 곡조는 음울한 프리지아 지방의 분위기를 내었고, 반면에 시편 19편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곡조가 다양한 리듬 형태로 되어 있으며, 교회선법 위주이지만 때로는 루터가 시도했던 것처럼 근대 조성의 선구적인 조성(調性)을 시도한 곡도 있다. 시편찬송의 운율은 당시 세속 유행가와 흡사하여 가사는 몇 개의 스탄자(stanza)로 부르는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12-14세기 프랑스 방랑시인들의 운율을 따른 것이었다. 시편찬송가에 선집된 대부분의 시편은 슬픔의 시(애가)이다. 그래서 조성 역시 애가답게 단조(특히 마단조)로 된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곡조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시편찬송은 낭만적인 노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곡조가 프랑스 세속 샹송의 멜로디에 근거했다는 의견이 종종 제기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리차드 테리가 밝혔듯이, 몇몇 곡조는 당대의 대중적인 민요(folk-song)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옳다. 사실 대부분의 시편찬송들은 완전한 창작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기존의 곡들을 편곡하거나 수정하고 변화시켜서 만들었기에 이 과정에서 독일 코랄과는 다른 프랑스 특유의 곡조가 많이 들어왔을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제네바 시편찬송가?에는 프랑스 알사스 지방의 전래 민요나 당대의 대중적인 곡조가 많이 채용되었는데, 이 곡조들은 당대의 대중적인 곡조이지만 무척 단조롭고 음의 이동이 급격하지 않는 등 칼빈이 제시한 시편찬송의 음악적 원칙과 비슷하다.
또한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영향을 준 곡조는 부르조아가 고대교회의 것을 모본으로 하여 만든 것들도 있다. 실제로 ?제네바 시편찬송가?에는 고대 중세 성가와 관련이 있는 부분이 적어도 10여곡이 있었는데, 그 곡의 대부분은 그레고리안 찬트에 근원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네바 시편찬송가? 129편에 사용된 Festa Julii인데, 이 찬송은 성 베네딕트 축제에 부르던 아침찬송에서 왔다.
칼빈은 단성 곡조를 고집했다. 그래서 칼빈의 시편찬송은 기본적으로 단성 곡조로 구성되었다. 칼빈은 경험에서 나온 문제에 호소하면서 다성 곡조인 합창 음악의 심리학적인 힘을 묘사한다. 그는 “사실 우리는 경험상 노래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불을 지피는 큰 힘과 열정이 있다”는 말로써 음악의 힘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음악의 위험 요소라고 칼빈은 경고한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식탁이나 가정에서 여흥으로 즐기는 음악도 있다. 하지만, 음악적인 힘이 찬송하는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려고 교회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부르는 시편은 여흥으로 부르는 음악과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이 여기서 어떤 구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일반적인 합창음악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상황에서 사용되는 합창음악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런 원칙들은 일찍이 깨졌다. 1565년쯤 두 가지 내용에 변경이 가해졌다. 멜로디는 소프라노 파트가 담당했고, 가정에서 그리고 예배 때 부르는 찬송이 아닌 경우를 대비하여 합창 반주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하여 ?제네바 시편찬송가?에도 합창이 사용되고 4성부가 부르는 악보가 나옴으로써, 화음 찬송이 한정된 경우에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초창기 시편찬송이 단성율로만 구성되지는 않았다는 것과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문제가 칼빈주의 원칙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2.3 찬송의 확장
시편찬송은 매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찬송은 교회에서만 아니라 가정에서, 밭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그밖에 공공장소에서, 심지어 지역 식당에서도 불려졌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만 아니라 음악가에게도 알려졌다. 칼빈은 1543년판 ?제네바 시편찬송가? 서문에 두 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첨가하면서 이런 내용을 권하였다.
찬송하는 것은 심지어 가정과 들판에서도 우리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한 기관(입)을 자극한다. 그리고 찬송은 우리의 마음을 그분에게로 끌어올리며,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덕과 선하심과 지혜와 공의로우심을 묵상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칼빈이 찬송을 부르는 공간을 확대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어리석고 타락한 기쁨의 수단을 찾지 말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데 있다. 칼빈에 따르면, 음악은 사람을 재창조하고 기쁨을 주는 것 중에서 첫 번째 위치를 차지하며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다. 찬송이 이처럼 막중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므로 찬송은 정직하고 거룩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존경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묵상하게 한다.
이런 정신이 교회에게 공감을 얻어 시편찬송가는 처음에 스트라스부르에서 시작하여 제네바 전역으로, 아니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마다 불려졌다. 그래서 종교개혁 당시 칼빈주의자들은 시편을 부르는 사람으로 특징지어졌고, 칼빈이 주도한 프랑스 종교개혁은 “시편찬송을 부르는” 그리스도인 군대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시편찬송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화란, 독일, 헝가리, 영국 등으로 퍼져나가 개혁파 교회와 장로교회에서 불려졌다. 특히 17세기 영국의 반 국왕파에 속한 크롬웰의 의회당원(Roundheads)과 스코틀랜드의 언약주의자들 등은 전투에 나가면서 시편을 노래했다. 이처럼 어느 공동체가 시편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그들이 개혁파 정신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2. 칼빈의 시편찬송가와 그 정신에 대한 평가
이제 칼빈의 시편찬송의 원칙과 그의 업적을 평가해보자. 첫째, 칼빈의 시편찬송가는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음악적인 용어로 독특하게 표현한 개혁파 찬송가이다. 칼빈의 시편찬송가는 로마 가톨릭의 미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특정한 사람(칸토)만이 부르던 예배용 찬송을 대중들이 부를 수 있으며, 그것도 자국어로 부르게 했다는 점에서 큰 공헌을 하였다. 이것은 단지 편의성 측면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편을 부른다는 것은 자신이 로마 가톨릭 교도와 구별된 칼빈주의 신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누구나 알 수 있게 하는 자기 정체성 천명과 관련이 있다.
둘째, 청교도들이나 재세례파들이 모든 예전 형식을 “타파”하려 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칼빈은 예배의 형식과 정신을 “개혁”하려고 하였다. 더욱이 예배용 음악과 관련하여 칼빈은 기본적으로 루터와 쯔빙글리의 중간 위치에 서 있던 사람으로 평가된다. 루터는 시편뿐만 아니라 세속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교회 음악에 악기를 사용했다. 반면에, 쯔빙글리는 음악가적 소질이 있었으면서도 교회 예배에서는 어떤 음악도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다. 쯔빙글리는 음악이 교회에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떼어지게 할까 염려하여 교회에서 모든 음악을 거절하였으며, 심지어 그의 추종자들은 교회 안에 있는 오르간을 부수는 데까지 나아갔다. 칼빈은 이 두 입장의 중간에 서 있었다. 칼빈이 중도를 지키면서 예배의 개혁을 이끌어 성공한 것은 후대 교회를 위해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세상에서 살면서 세속문화에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는 신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칼빈에게서 세상과 동화되어서도, 세상과 단절해서도 안 되고, 세상을 개혁하느라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칼빈이 인간이 만들어낸 노래는 경박하고 이단적인 요소가 끼어들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한 노래는 하나님으로부터 감동받지 않은 사람은 쓸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재론의 여지가 있다. 설령 칼빈의 입장이 예배용 찬송가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칼빈은 음악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예배에 알맞은 거룩한 노래를 찾느라 음악에 엄격한 태도를 취하면서 성경의 시편만이 예배에 가장 적합한 가사를 담고 있다고 믿어 시편만을 가장 적합한 찬송가로 선택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칼빈은 교회 음악을 위해 만든 그의 원칙들을 그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찬송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와야 하고 교회 음악은 단순한 여흥(엔터테인먼트)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신학에 맞는 찬송을 만들었다.
더욱이 그는 이해력, 의지, 감정, 영혼, 몸 등 사람들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오염되었다는 그의 신학에 의거하여 시편을 운율이 있는 가사로 번역하여 노래하되, 악기 없이 아카펠라(무반주)로 부르는 것을 제안했다. 그는 죄의 오염으로 인간이 성경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칼빈은 칼빈주의 음악의 특징적인 전통을 만든 셈이다. 이후에 극단적인 개혁파 교회에서는 실제로 시편찬송만을 예배에 부르기에 합당하고 공식적인 찬송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편만을 예배용 찬송으로 불러야 한다는 정당한 이유라고 하기에는 성경적인 근거가 빈약하며 재론의 소지가 많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시편만을 찬송으로 부르라고 언급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시편을 찬송으로 부르거나 그렇게 하라고 권한 본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대상 16:9; 시 95:2; 엡 5:19; 골 3:16), 이런 경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시” 또는 “시편”이란 예배 시간에 사용된 노래를 가리키는 총칭일 뿐이지 정경의 한 분분으로서 “시편”을 가리키는 용어는 아니다. 더욱이 성경에는 시편을 교회의 예배용 찬송의 유일한 규범으로 주었다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구약성경에는 시편이 나오기 전에 하나님을 찬송하던 몇 가지 예가 있으며(출 15장; 민 21:17-18; 신 32장; 삿 5장 등등), 신약시대의 교회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담은 내용을 찬송하기도 하였다(빌 2:5-11; 골 1:15-20; 딤전 3:16 등등).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찬송하기를 요구하신 “새 노래”는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행위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기념하여 부르던 찬송이다(시 33:3; 40:3; 144:9; 149:1; 사 42:10; 계 5:9; 14:3). 모세가 홍해에서 부른 찬송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일종의 새 노래였으며(출 15장), 광야에서 물을 마신 후에 부른 노래 역시 그러하다(민 21:17-18).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갱신했을 때에도 새 노래를 불렀다(신 32장).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최절정인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새)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초기의 교회 찬송들은 시편에서 유래했지만, 교회는 곧바로 기독교적인 새로운 노래를 창작하였다. 그 노래에 반영된 리듬, 대구법, 명확하게 나뉜 절, 시적인 표현 등은 그것이 그 시대에 불린 찬송이었다는 분명한 증거들이다. 신약성경에는 마리아의 찬송(Magnificat. 눅 1:46-55), 사가랴의 찬송(Benedictus. 눅 1:68-79), 천사들의 찬송(Gloria. 눅 2:14), 시므온의 찬송(Nunc Dimittis. 눅 2:29-32) 등 예수님의 탄생을 노래한 찬송시들이 있다. 교회의 예전적인 전통에 따르면 이 찬송들은 교회에서 매일 하나님을 찬송할 때 사용되었다. 이밖에 신약성경에 찬송시의 형태로 되어 있는 본문들이 있는데, 요한복음 1:1-18, 로마서 1:3-4, 고린도전서 8:6, 고린도후서 5:17-21, 빌립보서 2:5-11, 골로새서 1:15-20, 디모데전서 3:5-6; 3:16; 6:11-12; 6:15-16, 디모데후서 2;11-13, 디도서 3:4-7, 히브리서 1:3-4, 베드로전서 3:18-22 등이 대표적이며,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하늘의 찬송(4:8, 11; 5:9-14; 7:12; 11:17-18; 15:3-4) 등도 찬송의 형태로 되어 있는 본문들이다.
바울 사도에 따르면 구약의 모든 것은 “장차 올 것의 그림자”였다(골 2:17). 이제는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미암아 계시된 시대가 도래하였다(히 1:1, 2). 그렇다면 더더욱 신약시대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내용을 담은 찬송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칼빈의 시편찬송은 루터가 창작된 가사를 사용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자작된 가사의 찬송을 배제하려 하였다. 칼빈이 우리가 예배에서 너무 경박한 찬송을 부르지 말고 “중후하고 위엄이 있는” 찬송을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본적으로 예배용 찬송과 일상적으로 부르는 찬송을 구별한 것은 우리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충분히 시사해주고 그의 통찰에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예배용 찬송의 가사를 영감 된 내용인 시편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한편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칼빈은 이 원칙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례로 보여주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칼빈은, 가사는 시편에 한정했으면서도, 곡은 세속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와는 달리 세속성을 강하게 반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세속성을 철저히 배제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초기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곡조를 작곡했던 마로는 사실 개신교도가 아니라 복음주의자요 동시에 인문주의자였다. 그의 인문주의 정신이 시편찬송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시편찬송가의 곡조가 샹송의 분위기가 나는 예술성 있는 곡조라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음악에 전문성이 없었던 칼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이 시편에 세속적인 곡을 사용하거나 여러 기존의 곡들을 인용하였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사실은 동시에 교회가 당대에 유행하는 곡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넷째, 칼빈은 시편찬송을 교회의 예배용 찬송으로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사실 찬송에 대한 그의 이해는 기도에서 출발한다. 칼빈은 기도의 두 종류 가운데 “노래로 하는 기도”를 찬송 영역에 적용하였다. 이런 견해는 마치 찬송이 예배의 독립된 요소로 작용하기보다는 기도에 종속된 듯한 인상을 준다.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시편의 장르 중에서 순수 찬양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실리지 않았고 주로 고백과 애가 위주의 노랫말이 차지한 것은 찬송에 대한 칼빈의 생각이 편중되었음을 반영한다. 시편은 기도를 노래로 표현한 것이기보다는 기도와 구별된 독립된 장르로서 찬양시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시편이 독립된 찬송의 요소가 있다면, 찬송으로서 지녀야 할 음악적인 요소를 생각해야 한다. 시편의 곡조 중에서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곡조가 들어가야 하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 역시 즐겁게 불러야 한다. 그 곡조가 세속적인 음악으로서 예배의 분위기를 흐리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공동체의 규모에 맞는 악기 사용과 음악적 효과를 위한 화음은 찬송이 지닌 음악적 요소와 내용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고 찬송의 목소리를 더욱 고양시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이 사람의 본성이 타락했고 악기 역시 그러하기에 가급적이면 소박한 단성율로 부르고, 음의 높고 낮음도 심하지 않게 악기도 동반하지 않기를 바랐으며, 심지어 악기가 유치한 단계인 구약시대에서나 사용되던 것이라고 밝혀 극단적인 개혁파 교회에서는 이러한 칼빈의 말을 그대로 맹종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 타락의 요소로 따진다면 인간의 마음은 모두 부패했고, 마음에서 나온 모든 것이 더럽기 때문이다(막 7:20-23).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이 거룩하여졌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히 13:12). 음악적 요소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다. 칼빈이 원칙적으로 악기 사용을 반대한 것은 당시의 상황 때문에 취한 극단적인 행동이지, 그 후의 교회가 칼빈의 예를 전범으로 삼을 성경적인 원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21세기 한국장로교회 찬송을 위한 제안
위의 연구의 결과 필자는 개혁파 전통에 노선에 서 있거나 개혁파 전통을 거론하는 교회에게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개혁파 신학을 부르짖거나 개혁파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나는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시편찬송을 다시 부르기를 제안한다. 앞에서 평가한 것처럼 칼빈이 제안한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에 반성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시편찬송만이 예배용 찬송으로 유일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시편찬송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많은 찬송 중에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예배에서 시편찬송이 도외시되고 점차 현대 신학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는 작사 작곡자들이 만든 CCM이 불리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파 전통에 속한 교회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예배와 일상생활에서 시편찬송을 자주 불러야 한다. 시편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칼빈주의자들에게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체성은 동일한 집단의 단합을 의미한다. 처음부터 칼빈주의자들은 “시편을 노래하는 사람들”로 알려졌다. 종교개혁 당시 다른 혁명 단체들이 자기들의 노래를 부른 것처럼, 동일한 이유로 칼빈주의자들은 그들의 노래로 시편을 불렀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시편을 노래할 때 구체적인 대상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시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들이 부르고, 성경의 역사 내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불려진 찬송이다. 그러므로 시편을 부른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으며, 이전에 하나님의 언약백성에 속했던 사람들과 동일한 공동체에 속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편을 찬송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고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하나라는 의식을 가질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는 많은 교회가 복음송과 CCM을 부름으로써 저들만의 찬송문화를 공유하며 서로 간에 동질의식을 갖는다. 그렇다면 개혁파 전통에 속한 교회들도 교의적인 내용만 부르짖고 그런 내용만 거론할 것이 아니라, 개혁자들의 예배 정신이 바르게 드러나 있는 시편찬송을 수집하거나 새롭게 만들고 실제로 예배에서 자주 불러 자신들의 정체를 천명해야 한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총체적인 표현이다. 시편만을 부르는 것만이 개혁파 교회에 속했다는 주장은 너무도 극단적인 입장이긴 하지만, 그리고 우리 역시 한국 교회가 공동으로 부르는 21세기 찬송가를 예배시간에 주로 부르기는 하지만, 시편찬송은 개혁파 교회의 전통에 서 있는 신자들로서는 예배 찬송 중에 한두 번은 반드시 불러야 하는 찬송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다.
둘째, 시편 이외에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그리스도 찬송시도 운율을 붙여 찬송하는 데 관심을 갖기를 제안한다. 칼빈은 예배용 찬송의 가사는 영감 된 내용을 하는 가사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편에 한정했다. 그러나 동일한 단어(말) 중에서, 시편을 노랫말로 사용하지 않는 찬송의 가사가 어떤 의미에서 찬송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또 시편의 내용을 어느 정도 범위에서 찬송가 가사에 반영해야 하는지는 모호하다. 현실적으로 시편의 내용을 운율에 맞춰 개정하는 과정에서 시편 본래의 가사는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다. 현재 영어권에서 부르는 찬송이나, 한국에서 발표된 시편찬송을 분석해 보면 운율에 맞추느라 어쩔 수 없이 원래 시편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즉 시편을 운율화하는 과정과 다른 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미 원래 언어는 파괴되고 만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오히려 성경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 땅에서 겪는 희노애락의 정제된 감정을 노랫말로 하는,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노래하는 가사가 개발되고 거기에 맞게 곡조를 붙인 찬송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특히 초대교회가 시편찬송과 아울러 그리스도 찬송시라고 알려진 신약성경에 언급된 찬송을 부른 것은 신약 교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교회는 구약의 교회와 맥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신약의 교회와도 맥을 같이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다양한 찬송이 교회에서 불려야 한다.
셋째, 현대 개혁파 교회가 칼빈이 당시에 시행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찬송가에서 음악성을 배제하고 무미건조하게 찬송하기보다는 찬송의 음악성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예배 중 악기를 사용하는 것과 찬송의 음악성에 대해 보인 칼빈의 극단적인 태도는 로마 가톨릭의 미신과 우상숭배적 요소를 겨냥해서 그것을 지양하려고 행해진 극단적인 입장이었다. 필자는 이것이 그 당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적용되던 상황적인 것이지, 찬송의 규범으로 받을 만한 내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찬송을 부를 때 예배 음악에 맞는 곡 선정과 예배 분위기에 맞는 악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여 적합한 악기를 사용하는 문제와 예배에 어울리지 않는 악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멜로디가 첨가되면 가사는 마음에 좀 더 강하게 뚫고 들어온다고 주장한 것처럼, 칼빈 자신도 음악의 힘을 누구 못지않게 강하게 인식하였다. 칼빈은 죄로 인해 음악이 부패했다는 음악의 부정적인 면 때문에 예배용 찬송에서는 단조로운 곡조에 무반주 찬송을 하게 하였지만, 역으로 음악이 선용된다면 가사의 내용이 얼마든지 더 잘 전달되고, 찬송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욱 고양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예배를 드리는 상황에 아무런 음악을 무작정 들여올 수도 없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말씀의 효과를 마음에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음악이 천박하거나 소음으로 가득 차면 음악은 하나님의 말씀의 충분한 효과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고 찬송의 음악적 특성은 물론이거니와 예배의 정신마저 흐리게 하여 자칫 찬송과 예배 자체를 천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음악에는 이와 같은 전혀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음악을 사용하는 데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파 교회는 예배용 음악의 질적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아니, 개혁파 교회에 속한 신자들 개개인이 음악 이해력 향상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신자 개개인의 음악적 수준은 예배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예배 찬송을 인도하는 사람들의 질적 향상과 예배와 찬송의 정신으로 잘 무장하도록 권해야 한다. 예배와 찬송의 정신을 모르는 사람을 단지 악기를 잘 다루고 음악을 좋아하고 리더십이 출중하다는 이유만으로 예배 전이나 예배 중간에 찬송을 인도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찬송을 인도하는 사람은 혼자 마이크를 사용하여 전체 회중의 소리를 압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가는 말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는 “오직 성경”의 원리에서 출발했다. 이전의 미사 중심의 예배와 특정한 사람들 중심의 찬송에서 성경적인 표준을 찾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에 합당한 가장 접합하면서도 대중들이 부르는 예배 찬송에 어울리는 찬송집으로 만들려는 종교개혁 정신의 산물이다. 칼빈은 예배 찬송의 형식을 유지하려고 음악적인 요소를 많이 희생하면서까지 예배의 찬송을 시편에 한정했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찬송의 원리를 제시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그 목적을 완벽하게 이루지 못했다. 그가 로마 가톨릭의 예배 의식과 당대의 상황을 의식했다는 것에 그 부분적인 이유가 있겠으나, 그가 음악성과 관련하여 설명한 이해가 너무도 극단적이라는 사실에서도 부분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더군다나 칼빈은 신약교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신약교회의 찬송 역시 구약의 시편에 한정한 것은 초대교회가 일찍이 그리스도 찬송시를 부르면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는 교회의 실제적인 상황(콘텍스트)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교회는 당대의 삶의 정황과 완전히 단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당대의 상황을 그분의 말씀을 전달하고 또 예배하는 도구로 삼으시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콘텍스트 문제를 비 성경적이라고 도외시하며 시편만을 고집한 칼빈의 업적은 또 다른 면에서 비평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칼빈이 우리에게 단지 성경에 정박되어 있는 시편을 여전히 교회에게 예배 찬송으로 사용하기를 권하고 그것을 장려했다는 점에서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칼빈에 대해 극단적이라고 평가한 것과는 다르게,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는 개혁파 신앙고백을 받아드리고 개혁파 신학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칼빈의 경우와 정 반대의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현대 교회에서 시편이 찬송으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이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교회, 심지어 장로교회에서도 시편을 찬송하는 일이 무척 드물다. 교회가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덕을 칭송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 목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교회가, 아니 장로교와 개혁파 신앙을 천명하는 교회라면 시편찬송을 자주 불러 바른 예배를 회복하고 개혁자들의 바른 신학을 천명해야 할 것이다.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이 칼빈이 언급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치 시편찬송을 성경적인 찬송의 규범인 양 독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지만, 종교개혁의 정신을 가진 장로교회는 우리 신앙의 큰 스승이신 칼빈의 찬송의 정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시편찬송을 부르자. 예배에 한 두 곡이라도 시편을 부름으로써 개혁자들의 후손임을 확인하고, 예배에서든지 일터에서든지, 공동체적으로든지 개인적으로든지 시편의 내용으로 자주 찬송하여 하나님을 높이며 우리의 영혼을 고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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