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만남
- 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과의 모종의 만남
최근 들어, 세계 교회 내의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의 양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어느덧 개신교내의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은 보수와 진보 신학의 연대(連帶)를 뛰어넘어 로마 카톨릭과의 적극적인 연정(戀情)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모던 레포메이션(Modern Reformation)지에 따르면, 2004년 10월 미국 버밍험에서 열린 에큐메니칼 회의에서, 카톨릭과 개신교를 대표하는 16인의 신학자들이 서명한 “기독교 연합을 위한 프린스톤 제안"(The Princeton Proposal for Chistian Unity)이라는 선언문이 채택된 바 있다. 이 선언문은 오늘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위험한 관계가 어떠한 형태로 발전해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리쳐드 존 뉴하우스(Richard, J. Neuhaus)는 루터교 신학자에서 카톨릭 사제로 전향한 자로서 이 모임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재 “First Things"의 편집인으로 복음주의권과 카톨릭계 안에서 얻은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두 교파간의 실질적인 연합과 일치 운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는 1994년 복음주의 베스트 셀러 작가인 동시에 미국교도소 선교회 이사장으로 미국 복음주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챨스 콜슨(Charles Colson)과 함께 “복음주의자들과 카톨릭 교도와 함께(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라는 문서를 발행하여 미국 전역에 배포하였다. 두 사람은 이 문서를 통해 그동안 역사 속에서 복음주의와 로마 카톨릭 사이의 불편했던 신앙적 관계를 청산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부패를 대처하기 위한 양자 간의 협력과 양보를 다짐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복음주의와 카톨릭과의 연정을 넘어 아예 동침을 선언한 이 문서의 작성 이면에는 현재까지 세계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과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는 점이다. 영미 복음주의 신학의 상징이 된 제임스 패커(J.I.Packer), 트리니트 포럼의 오스 귄니스(Os Guinness), 대학생 선교회의 창설자 빌 브라이트(Bill Bright), 미국 보수우익 복음전도자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 풀러 신학교의 기독교철학 교수 리처드 모우(Richard Mouw), 복음주의 기독교 역사가 마크 놀(Mark Noll), 제네바 대학의 존 화이트(John White)등이 그들이다. 이쯤이면, 복음주의와 로마 카톨릭은 한 지붕 한 가족이라 할 만하다. 카톨릭 교회와 안방 살림을 차렸는데, 에큐메니칼 신학을 문 밖에 세워둘 이유가 있겠는가?
결코 로마 카톨릭과 하나될 수 없는 명백한 이유들
이 문서를 작성하는데 동참한 한 복음주의 신학자는 자신이 개신교인이면서도 카톨릭 교회와의 연정 문서에 동참하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①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는 오래전부터 사도 신경이라는 공동의 신앙고백을 갖고 있었다.
② 개신교는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발생했으므로 주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있다.
③ 작금의 로마 카톨릭은 중세의 카톨릭이 아니며, 많은 부분에서 부단한 자기 개혁을 통해 개신교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④ 이미 빌리 그래함이나 오순절 교회와 같이 많은 개신교 지도자들과 교회들이 로마 카톨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⑤ 제 3 세계 선교 사역에 과도한 경쟁과 중복 투자를 피하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구원 사역의 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⑥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로마 카톨릭과의 직간접 연대는 피해갈 수 없는 선택사항이다.
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결코 로마 카톨릭을 신앙 동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록 위의 주장들이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언정 성경과 종교개혁의 정당한 변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① 사도 신경에 언급된 “거룩한 공회”(the Holy Catholic Church)는 로마 카톨릭을 가리키지 않을뿐더러 로마 카톨릭의 중심 교리는 비성경적이이며 반종교개혁적이다.
② 개신교는 로마 카톨릭이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탄생한 종교이다.
③ 오늘날 외형적으로 중세의 로마 카톨릭을 극복하고 있지만 내용(신학과 신앙)면에서는 그 어떤 개혁도 없었다.
④ 로마 카톨릭과 연정을 꿈꾸는 개신교에 속한 인물과 교회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⑤ 선교는 오로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다.
⑥ 바람직한 사회개혁이란 인위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성경적인 종교개혁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분명히 말해두자. 수 천 년간 어떤 내적 변화의 조짐도 없는 그들의 교훈과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명백히 다른 종교이며, 다른 형제이다. 하지만 그들의 변신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들의 유혹은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그들 앞에선 신학적 차이나 교회사적 구별은 더 이상 의미 없는 몸짓이 되어 버렸다. 자유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복음주의자든 심지어 개신교인이든 타종교인이든 상관이 없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라는 먹음직한 먹이를 내놓고 덥석 집어 삼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화려한 자태와 음흉한 몸짓으로 먹이를 유인하는 식충식물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며 몸부림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 출처 :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ArticleRead.nhn?articleid=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