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동역자들을 생각하며... (퍼온 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한창 유행이었다. 큰 것만 추구하는 세파에서 작은 것의 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물가가 비싸고 기름 값이 치솟는 시기에야말로 많아서 낭비하지 않고, 커서 힘들어하는 것이 없는 작은 것들, 소형차 등이 인기가 있다. 그런데 유독 작은 것이 무시당하고 외면되는 곳이 있다. 그것은 교회이다.
초대교회는 하나같이 작았다. 물론 많은 성장을 이루어서 금새 수백명으로 불어난 교회들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극소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작은 교회들을 무시하거나 실력없는 목회자들이라고 경멸하는 일은 없었다. 다 같이 주 안에서 동역자요 모두가 다 주님의 교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대는 개인이 우상시되고 있다. 교회가 커지면 담임목사의 능력이 특출하기 때문이요 작거나 별 성장이 없으면 실력 없는 목사로 낙인된다. 작은 교회 성도들도 자기 교회에 대한 자부심은 별로 없고 기회만 되면 보다 시설이 좋고 안락한 곳으로 옮기고 싶어한다. 목사는 노회에서도 인정도 받지 못하고 총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며 동창들 사이에서도 사람 행세하기가 힘들다. 기회만 되면 큰 교회에서 청빙을 받고자 꿈꾼다. 비록 개척의 원대한 꿈을 갖고 시작하여 피눈물 흘리며 교회를 시작했을지라도 양 떼를 버리고 떠난다. 그것이 안되면 너도나도 교회를 키우고자 하는 탐욕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무리수를 두게 하고 결국 진리의 파숫군으로서 사명보다 진리를 파는 장삿군으로 전락한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일은 이 시대에 더 급증한다. 장사해서 이익만 남기려는 것이 주 목적이 되기 때문에 정작 먹여야 할 진리에 대한 깊은 탐구나 묵상이 없고 성장 방법론에만 매달린다. 결국 사람들의 욕구 충족과 소비자 만족 시대에 부응하는 사람들의 일군이 되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를 바르게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대도시나 지방이나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겪는 심적 아픔과 고통은 경험해 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적인 조롱과 멸시 혹은 자책감 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진리의 일군들이 반드시 기억할 것은 우리의 부르심이다. 목사로 부름을 받은 것이 사람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로 다니는 자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경에 있는 이상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적 적용원리이다. 사명 때문에 굶주리고 조롱을 받으며 핍박을 받는 것이다. 주님께서 목숨의 위협이 누구보다 심한 엘리야를 붙든 것도 하나의 위로가 된다.
목사는 교회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매여 있어야 하고 우리를 보내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일군이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목사는 교회를 위해서 존재한다. 교회를 떠난 목사직은 생각할 수 없다. 교회 양무리들을 위해서 헌신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특정한 지역에 한정된 사역에 자신을 매이게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세계 곳곳에서 진리를 전할 수 있는 기회들도 있다. 문서선교도 가능하다.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전파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항상 진리의 교훈에 따라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며 진리가 동력이어야 하는 것이다. 기록된 진리를 위한 것이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작다고 책망하지 않고 크다고 칭찬하지 않으시는 주님께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 기록된 말씀 밖을 넘어가지 않는 종을 찾으신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 주님의 심장으로 작은 교회를 위해 그리고 진리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동역자들에게 주의 은혜와 평강과 위로가 풍성하기를 기원한다.
- 이 글은 서울 삼양교회 담임을 맡고 계시는 서창원 목사님의 글임을 밝힙니다.